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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A씨는 아들에게 시가 20억원 상당의 2층 단독주택을 증여하면서 효도각서를 받았습니다. 같은 집에 살며 부모를 잘 봉양하고 제대로 모시지 않으면 재산을 모두 되돌려 받겠다는 내용이었는데요. 하지만 아들은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식사조차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간병도 따로 사는 누나와 가사도우미에게 맡겼죠.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에게는 요양원에 가기를 권하며 막말을 쏟아냈는데요. 아들에게 크게 실명한 A씨는 물려준 부동산 소유권을 다시 돌려 달라는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A씨의 아들이 쓴 각서에 '부모님을 충실히 부양한다'는 것은 부모자식간의 일반적 수준의 부양을 넘어선 의무가 계약상 내용으로 정해졌다는 것이고 자녀가 그와 같은 충실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부모가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증여한 부동산을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었는데요.(2015다236151 판결)
A씨는 증여했던 재산을 다시 찾아오는데 성공했지만, 위 사건은 효도계약서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번 증여한 재산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소송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많은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시간과 비용, 정신적 고통을 줄일 수는 없을까요? 이러한 이유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유언대용신탁 입니다.
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효도
효도를 계약했다는 것은 법률적으로는 '부담부 증여계약'을 의미하는데요. 원칙적으로 우리 민법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은 자식이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부모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제556조).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행하기 전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이미 이행한 부분 즉, 자식 앞으로 이미 등기까지 마친 경우라면 재산을 돌려받기 어렵다는 것이죠.(제558조)
위 A씨처럼 명확하게 효도계약서 내지 효도각서를 통해 조건을 명시해놓은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자식앞으로 등기가 완료되었다고 하더라도 증여를 해제하고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증여한 주택을 돌려받기 위해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대법원까지 3차례 소송을 수행해야만 했다는 것은 증여의 문제점을 잘 보여줍니다.
자식을 얼마나 못 믿으면 효도를 계약까지 했느냐는 비웃음을 뒤로 하더라도 만약의 상황에 재산을 돌려받기 위해 자식과 기나긴 소송전을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이 그 대안으로 신탁을 찾고 있는데요.
상속을 신탁한다고?
신탁이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금융기관을 수탁자로 지정해 보유하고 있는 현금이나 부동산, 주식 등을 내가 원하는 대로 운용하게 하는 상품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죽음을 미리 논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잘 활용되지 못하다가 최근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가족 간 상속과 관련해 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러한 다툼을 막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유언대용신탁의 경우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이 수탁자(금융기관)와 계약을 맺고 피상속인의 생전과 사후로 나누어 재산의 수익자와 상속받을 사람을 정하는 신탁의 한 형태입니다. 생전에는 자신을 수익자로 정해 운용수익을 통해 일정 수입을 보장받고 사후에는 미리 계약한대로 자산을 상속·배분하는 계약입니다.
즉, 재산에 대한 실질적인 소유권을 계속 보유하면서 상속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죠. 유언을 남길경우 재산 상속시에는 자산이 사후 한꺼번에 넘어가는데 반해 신탁을 활용해 다양한 조건을 걸면 원하는 시점에 자산을 나눠 상속하거나 처분을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효도계약서 보다 유언대용신탁을 추천하는 이유는?
유언을 신탁하는 방법의 가장 큰 장점은 유연성입니다. 미래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예측 가능한 모든 상황에 따라 그 계약의 내용을 미리 설정해둘 수 있기 때문에 생전에 자녀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신탁계약을 해지하고 재산을 위탁자에게 환원시킬 수 있죠.
예를 들어 신탁의 수익자를 큰아들로 지정했다가 갈등이 생기거나 부양 태도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이를 철회하고 수익자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증여의 효과를 누리면서 한 번 증여한 재산은 쉽게 돌려받을 수 없다는 증여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죠.
또한 특약을 통해 다양한 위험 상황에서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도 있습니다. 치매 위험에 대비한 특약을 체결해 재산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도 있고, 본인을 위해 진심으로 재산관리를 해 줄 수 있는 지인을 임의후견인으로 지정해 더욱 실효성 있는 법적 장치를 만들 수도 있죠. 임의후견인이 신탁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도록 신탁회사가 통제하기 때문에 위험성도 낮습니다.
게다가 사후에 유언이 확실히 집행된다는 점도 장점인데요. 유언장의 경우 법적 효력을 가지려면 엄격한 요건이 필요해 자필 작성, 날짜, 주소, 날인, 증인 등 한 가지 요건만 만족하지 못해도 유언은 무효가 돼 뜻대로 상속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탁을 설정하면 자산 소유권이 증권사로 넘어가고 증권사는 계약에만 따르기 때문에 신탁자의 뜻이 그대로 이행되는 것이죠.
부모와 자식 사이에 효도계약서 등을 통해 효도를 조건으로 재산을 증여한다는 것이 씁쓸하지만 수명이 계속해서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노후자금이 얼마나 필요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어쩌면 필연적인 흐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쓰고 남는게 있다면 자녀에게 물려주겠지만, 미리 줬다가 모자라면 다시 돌려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죠. 그렇기 때문에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물려주더라도 서로 더 큰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사전에 그 시기와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야만 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린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기존 법정상속제도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미리 안전장치를 준비해두는 것이 남인 인생을 분쟁 걱정 없이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희 법무법인 명경(서울)은 하나은행과 업무협약(MOU)를 체결해 상속분쟁과 관련한 법률상담뿐만 아니라 자산신탁 상담까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명경에서 상담을 진행하시면 자산관리 수수료를 일정부분 조율해드리고 있으며 전문가들을 동반한 상담을 통해 개개인이 맞춤 상속플랜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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